2009년 05월 25일
추억이 아니다. 추억하지 마라
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,
빛바랜 풍경 하나가 이 곡에 있다.
때는 봄이었고,
우리는 대학교 2학년생이었다.
하루 종일 최루탄 연기를 잔뜩 맡은 우리는
카페 `에로이카'에 앉아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.
창 밖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.
무언가, 모든 대화나 시나 철학을 넘어,
다른 그 무엇을 통해 울어버리고 싶었다.
언어 이외의 것으로 말이다.
한 선배의 공책을 찢는 소리가 이 침묵을 깨뜨렸다.
"뭐에요?" 한 친구가 조용히 물었다.
"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...비탈리의 샤콘느..."
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한 대씩 붙여물었다.
오르간의 저음이 흘러나오고,
마침내 그 카랑카랑한 바이올린의 절규가 쏟아졌다.
그 날, 우리는 술 한잔 걸치지 않은 맨정신으로 말 한마디 없이 울 수 있었고,
그럼으로써 이 곡이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것을 긍정한 셈이 되었다.
-야샤 하이페츠 음반 메뉴얼의 음악칼럼니스트 조희창씨의 글 중에서. -
"이 정부는 개똥같은 정부다. 그러나 내가 뽑은 나의 정부다."
내 대통령이었다.
난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긴 어두움이 끝나고 한국이 이제 시작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.
정치적으로 주의를 나타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, 그래서 처음으로 그 때문에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.
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3개월의 추웠던 한 여름을 고스란히 길바닥에 웅크린 채 처박을 수 있었다.
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우린 언젠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.
그가 내 대통령이었으므로.
우린 이제 시작되었으므로.
그 감각을 기억하기 때문에.
빛 바랜 사진속의 그가 당당하게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.
나 그런거 안한다고.
그 모습을 온전히 내 망막에 새겨진 그대로 기억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.
이것은 추억이 아니다.
빛 바랜 먼지마저 아름다운 것이 추억이라고 입아프게 말해왔었다.
그러니까 이것은 추억이 아니다.
그 사람은 내게 '시작'에 대한 기억이었다.
끔찍하고 초라하지만 조국이라 철철 울고 진저리치게 혐오하면서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던 이 땅이,
부디 내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지 말길 바란다.
나 그런거 안합니다.
추억 안합니다.
# by | 2009/05/25 23:16 | MM | 덧글(1)







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