090913

금요일 저녁 부장이 갑자기 회식을 공지했다.
그 거지같은 경우에 항상 예의예의 운운하는데 댁이나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좀 지키시지. 싶었다.
나는 예의가 없는 사람이 아니지 않다.
무슨 얘기냐면, 물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라는거 어쩌면 보통이나 상식이나 정상이라고 하는 것보다 10%쯤 더 따지고 더 지키고 더 존중하는 인간이 나지만, 대상을 가린다는 얘기다.
존경할 가치도 없고, 딱 상식 선에서 티만 안나면 그 이상의 예의는 지킬 마음도 생각도 들지 않는데 굳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거다. 물론 공정하지 못한 행동이란거 자알 알고 있다. 근데 내가 왜 공정해야 하는 거냐. 나한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한테.
지금 당장 내가 박차고 나가든, 해고를 당하든 회사를 나갔을 때 곤란한건 아무튼 나는 아니다.
내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목례나 하고, 웃는 낯으로 댁 의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거나 못 들었다고 말해 버린다고 해서 당신이 날 잘라버리겠다고 한다면, 그만큼의 밥값도 못하는 나는 이 회사를 나와야 하는게 맞고, 그런 기준으로 인재를 재단하는 회사는 나와야 하는게 서로에게 맞다.
예의만 잘 지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긴 당신 혼자 화롯불에 밤이나 구어드시면서 미국 유학가있다는 아들내미한테나 해 주시고.
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댁일거다. 그러니 능력보다 예의가 중요하다는 뻘소리를 성장하지 않으면 죽음뿐인 이윤추구형 기업에서 해대고 있는 거겠지.

어쨋든 많은 걸 생각하게 한 하루였다.
동상이몽.
직장은 직장일 뿐이다. 나는 사장과 고용계약을 맺었으며, 계약의 내용은 그가 내게 1년에 얼마를 주면 나는 그 만큼의 일을 하겠다는 거다. 그만두는 사람은 그만두는 이유가 있는거고 다니는 사람은 다니는 이유가 있겠지.
그러나 그것이 신뢰니 믿음이니, 악감정이나 나쁜 소문이나 악담 그런것과는 무관하다는게 내 생각이다.
어쨋든 우리는 한 달에 얼마간의 고정 수입이 필요한 사람들이고, 월급이 제때에 지불되는 한 일한다.
나에게 사회란 그런 곳이다.

징징거리지 마라.
회식 및 최근 일에 대한 총체적인 나의 의견은 그거였다.
사장이면 사장답게 의연하고, 아르바이트면 아르바이트 답게, 말단이면 말단답게 찌그러지는게 사회다.
각자가 자기 몫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 와중에 직원들이 예의가 없다는 둥, 오너로 사는게 힘들다는 둥, 나는 왜 휴가가 없냐고 징징대는 고용된지 한달도 안 된 알바의 푸념 따위 누가 안중에나 둘 성 싶으냐.

라는 요지의 말을 심지어 직접 해주었더니 돌아오는 건 허세였다.

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택시에 뛰어 들었고, 기사님은 내게 "위트있는 분이시네요. 별 생각없이 그냥 던지시는 말 같은데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있어요" 라며 활자로 찍어낸 듯이 크게 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었다.
기사님은 도착할 때 까지 진심으로 계속해서 웃었고, 나는 그 점이 좀 심란하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했다.
아이돌 그룹의 이름모를 어린애가 사는게 개같다고 친구 블로그에서 지껄인것 때문에 탈퇴당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기사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사이, 쥐도새도 모르게 인천공항이 매각되었다.
나는 아침이 올 때까지 혼곤히 잠들었다.
그냥 아침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.

by kije | 2009/09/13 03:11 | 날적이 | 트랙백 | 덧글(2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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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rin at 2009/09/19 12:02
그래서 회식은 잘 하셨나염?
어쨌든 먹을 땐 스트레스 안받고 잘먹어야지 말입니다..
Commented by kije at 2009/09/27 17:08
그저 쳐묵쳐묵 했지요. 괜찮아요. 비싼거 아니었거든요 (...) 전복회라도 되었다면 다음날 토하고 죽을 기세로 먹는데 집중했지 사장 비위 거스르는 소리따윈 아웃오브 안중이었을지도요 ㅎㅎ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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